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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ㅁ와 나생문

1. Y씨의 <ㅋㅁ(검색에 걸릴까봐 제대로 못쓰겠음)>가 드디어 개봉. 이로써 나와 내 지인들이 참여한 '우리들의 창고영화'들은 작년과 올해로 모두 개봉한 건가. -_-;;;
기자시사회에 낑겨 봤는데, 나야 감독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아니까 아쉬운 점은 아쉬운대로 넘어가면서 남들이 피식-하고 넘어갈 씬들도 킥킥거리며 웃으면서 본 거고,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글쎄 잘 모르겠음. 감독이 인정했다시피 영화가 잡탕찌개처럼 나온게 못내 아쉽다.
여하튼, 개봉 못하고 있는 상황보다는 개봉한게 감독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거니 뭐. 흥행 여부를 떠나 감독의 괴이한 코미디감각만은 인정받지 않을까 싶다. Y씨 화이팅!

2. 지난 주에 연극 <나생문>을 보고 왔는데, 연기들도 좋았지만 단 한 순간도 팽팽한 감정의 선을 놓치지 않고 힘있게 끌고가는 연출에 참 많이 놀랐다. 2003년 초연 때부터 연출자가 바뀌지 않은 이유가 있는 거겠지.
대나무숲으로 빽빽한 무대도 좋았다. 조명을 비추면 대숲 사이로 어스름한 달빛이 비추는 느낌이 나고, 바람에 흔들리는 대잎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일반적인 연극보다 암전의 효과가 두드러졌고, 대숲으로 장식된 무대뒤 통로를 잘 꺾어놓고 숨겨놓아 원근감을 살려 인물들의 등퇴장이 이뤄지는 것도 재미있었다.
도깨비불을 연상시키는 탈을 쓰고 힘있는 춤을 추던 혼령역을 한 세 배우는 이후 무사와 산적의 대결이 벌어질 때 쉴새없이 움직이며 몸과 몸을 결합시키면서 숲 곳곳에 놓인 다양한 장애물을 만들어내고, 대숲 뒤에 숨어서 극의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타악기 주자의 연주는 극의 진행 내내 보는 이들의 심장을 쿵쿵 뛰게 만든다.
영화 <라쇼몽>을 본 사람들도, 못본 사람들도 모두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연극. 다만, 인터벌 없이 100여분간 계속되는 극이라 허리 아픈 사람들은 불편한 좌석 때문에 고생 좀 하실 듯.
by dorian | 2009/11/03 17:31 | taste | 트랙백 | 덧글(2)
PIFF에서 본 영화들 - 줄리아는 밤에 데이트하지 않는다


아무 정보 없이 계획이 꼬여서 본 영화다. 원래는 펜엑 라타나루앙의 <님프>를 보려고 예매까지 했는데, 멍청하게 상영시간을 잘못 기억하는 바람에 영화를 놓쳤다. 극장까지 갔다가 그냥 오기도 그렇고 해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나마도 2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2시에 시작하는 줄 알고 잘못 예매한 것. -_-;;;

영화의 주인공은 귀도라는 유명작가. 명망있는 문학상 후보에 올라 자기딴엔 우습게 보고 있는 작가와 경쟁하며 심사위원들이며 여론에 굽신거려야하는 처지도 마음에 안들고, 이사와 새집 꾸미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은 아내와의 사이도 어딘가 소원해지고 있고, 예민한 사춘기 딸과의 관계도 마음 먹은대로 풀려가지는 않는, 권태로운 중년남자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딸의 수영 강사 줄리아. 수영을 억지로 배우는 것이 싫었던 딸의 귀여운 도발에 넘어간 귀도는 딸 대신 줄리아에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줄리아와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 밤에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줄리아가 밤에 데이트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도 일도 사랑도.. 그 어느 것에도 발을 깊게 담그지 못하고 책임지지도 않는 채로 비겁하고 안전하게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던 귀도가 줄리아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게 되고, 그 결과가 참혹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그제서야 그에게 그 모든 것이 진지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결국, 한 남자의 성장을 담고 있다.

영화는 간혹 유머러스하게, 간혹 참신한 표현 방식으로 귀도의 일상과 결핍을 전시한다. 그야말로 전시다. 일관된 맥을 짚지 못하고 내내 산만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 정도로 이 남자의 주변을 '전시'만 하는데 그친다.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었던 영화인데, 어느 선에서 머물면서 범작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주인공은 아베 히로시와 휴 로리를 닮아서 무척 정감이 가더라. :-) 캐릭터도 두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고...
여주인공인 발레리아 골리노가 눈에 익다는 생각을 했는데, 찾아보니 <레인맨>과 <못말리는 람보>에 나왔던 그녀였구나. 지금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꼽힌다는데, 확실히 젊었을 때 미국영화에서 보이던 이국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속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
by dorian | 2009/10/23 08:56 | taste | 트랙백 | 덧글(2)
PIFF에서 본 영화들 - 지알로


이탈리아 호러 영화 중에서 그나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다리오 아르젠토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그의 제자 미셸 소아비의 <아쿠아리스>와 <델라모르테 델라모레>(이걸 호러라고 해야 하나...;;;)다. 거슬러 올라가서,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도 별로 안좋아하고,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의 팬도 아닌데다가, 그의 영화 중 그나마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꼽는다고 해봐야 아르젠토 영화를 좀 본 사람들도, 대충 본 사람들도 모두 꼽는 <써스페리아>와  <페노미나> 정도인데 (<수정깃털의 새>는 아직 못봤으니 패스~), 굳이 왜 내가 이 영화를 부랴부랴 달려가서 예매까지 해서 봤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그것도 미카엘 하네케의 <화이트 리본> 대신 이걸 선택했다니, 오!). 혹시, 이런게 영화제 버프-인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난 아르젠토가 만든 지알로 계열 영화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다. 압도적인 시청각적 효과의 매력으로 한숨 나오는 스토리텔링의 허술함을 가리는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잉 때문에 실소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고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해서. <써스페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홀하게 아름다웠고, <페노미나>는 솔직히 마구 삭제된 버전을 본 터라 영화가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도 전혀 모른 채로 그냥 제니퍼 코넬리에 빠져서 본 것 뿐.

그런데도, <지알로>는 퍽이나 재미있게 봤는데, 이게 정상적인 감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지는 참으로 알쏭달쏭.
일단, 애드리안 브로디는 혼자 너무나 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인데다가 연기 스타일도 혼자 너무나 정극스럽게 정제되고 다듬어져 있어서, 참으로 영화와는 안어울리게 홀로 고심하며 명연기를 펼치고 있는 걸 보자니 참 안쓰럽고 웃기고, 사실은 잔혹하고 어두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조화가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혼자 극장 안에서 소리 죽여 웃느라 죽을 뻔... -_-;;;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호세도 울고 갈 발연기를 펼쳐보이는 엠마누엘 세이너(발음이 이게 맞나?)와의 투샷 같은 걸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그 안쓰러움은 궁극에 달하는데... (<비터문>에서도 정말 기겁했었는데, 나로서는,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라는 것 외에 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맹한 눈빛의 여배우 엠마누엘 세이너는, 아니 대체, 원래도 연기 못하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못할 수 있는 건지. 혹시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한 건가?)
컴플렉스 덩어리에 비틀어진 욕망을 가진 어이없는 색정광 살인마를 추적해가는 느슨한 논리야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만큼 뻔뻔하게 말도 안되는 단서를 갖고 밀고 나가는 아르젠토 영화도 못본 거 같다. 아, 이 기백이란! 그리고, 또 그걸 진지하게 연기하는 애드리안 브로디를 봐야하는 이 얄딱구리한 심정이란!

인형처럼 생긴 미녀들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하는 장면들이야 요즘 나오는 영화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장면에서 살인마를 도발하는 희생자와 그에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살인마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아내는 짜증섞인 긴장감은 잘 연출되었고, 마지막 시퀀스의 긴박감은 여느 호러 영화 못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택시의 시점으로 거리를 누비는 도입부 시퀀스. 위험하게 쿵쾅대는 음악과 함께 유유히 도시를 누비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전조를 깔아주는 이 시퀀스 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될 듯.


+ 몇 편 안되는 아르젠토 영화들을 보면서도 느껴지는 건데..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확실히 남다른 거 같다.
그 두려움이 이 사람을 자기 영화의 세계로 이끈 거 같기도...

by dorian | 2009/10/20 02:40 | taste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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