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호러 영화 중에서 그나마 내가 가장 재미있게 본 영화는 다리오 아르젠토감독의 영화가 아니라 그의 제자 미셸 소아비의 <아쿠아리스>와 <델라모르테 델라모레>(이걸 호러라고 해야 하나...;;;)다. 거슬러 올라가서, 마리오 바바의 영화들도 별로 안좋아하고, 다리오 아르젠토 영화의 팬도 아닌데다가, 그의 영화 중 그나마 재미있게 본 영화라고 꼽는다고 해봐야 아르젠토 영화를 좀 본 사람들도, 대충 본 사람들도 모두 꼽는 <써스페리아>와 <페노미나> 정도인데 (<수정깃털의 새>는 아직 못봤으니 패스~), 굳이 왜 내가 이 영화를 부랴부랴 달려가서 예매까지 해서 봤는지는 아직까지도 미스테리(그것도 미카엘 하네케의 <화이트 리본> 대신 이걸 선택했다니, 오!). 혹시, 이런게 영화제 버프-인가.
그러니까, 엄밀히 말하면 난 아르젠토가 만든 지알로 계열 영화들을 좋아하지도 않고, 솔직히 별로 관심도 없었다. 압도적인 시청각적 효과의 매력으로 한숨 나오는 스토리텔링의 허술함을 가리는 영화들을 그다지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과잉 때문에 실소가 나오는 영화들을 보고 있는 걸 잘 견디지 못해서. <써스페리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홀하게 아름다웠고, <페노미나>는 솔직히 마구 삭제된 버전을 본 터라 영화가 뭐가 어떻게 흘러가는 건지도 전혀 모른 채로 그냥 제니퍼 코넬리에 빠져서 본 것 뿐.
그런데도, <지알로>는 퍽이나 재미있게 봤는데, 이게 정상적인 감상의 범주에 들어가는 건지는 참으로 알쏭달쏭.
일단, 애드리안 브로디는 혼자 너무나 현실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인물인데다가 연기 스타일도 혼자 너무나 정극스럽게 정제되고 다듬어져 있어서, 참으로 영화와는 안어울리게 홀로 고심하며 명연기를 펼치고 있는 걸 보자니 참 안쓰럽고 웃기고, 사실은 잔혹하고 어두운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조화가 어찌나 우스꽝스럽던지, 혼자 극장 안에서 소리 죽여 웃느라 죽을 뻔... -_-;;;
드라마 <너는 내 운명>의 호세도 울고 갈 발연기를 펼쳐보이는 엠마누엘 세이너(발음이 이게 맞나?)와의 투샷 같은 걸 보고 있으면 그야말로 그 안쓰러움은 궁극에 달하는데... (<비터문>에서도 정말 기겁했었는데, 나로서는, 로만 폴란스키의 아내라는 것 외에 대체 무슨 매력이 있는 건지 알 수 없는 맹한 눈빛의 여배우 엠마누엘 세이너는, 아니 대체, 원래도 연기 못하는 건 알았지만, 어떻게 이렇게 연기를 못할 수 있는 건지. 혹시 일부러 그렇게 연출을 한 건가?)
컴플렉스 덩어리에 비틀어진 욕망을 가진 어이없는 색정광 살인마를 추적해가는 느슨한 논리야 그러려니 하지만, 그래도, 이 영화만큼 뻔뻔하게 말도 안되는 단서를 갖고 밀고 나가는 아르젠토 영화도 못본 거 같다. 아, 이 기백이란! 그리고, 또 그걸 진지하게 연기하는 애드리안 브로디를 봐야하는 이 얄딱구리한 심정이란!
인형처럼 생긴 미녀들을 납치해 고문하고 살해하는 장면들이야 요즘 나오는 영화들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 장면에서 살인마를 도발하는 희생자와 그에 비정상적으로 반응하는 살인마를 보여주는 장면들이 자아내는 짜증섞인 긴장감은 잘 연출되었고, 마지막 시퀀스의 긴박감은 여느 호러 영화 못지 않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택시의 시점으로 거리를 누비는 도입부 시퀀스. 위험하게 쿵쾅대는 음악과 함께 유유히 도시를 누비며 앞으로 일어날 사건들의 전조를 깔아주는 이 시퀀스 만큼은 오래도록 기억될 듯.
+ 몇 편 안되는 아르젠토 영화들을 보면서도 느껴지는 건데..
이 사람은 정말 자기 어머니에 대한 두려움이 확실히 남다른 거 같다.
그 두려움이 이 사람을 자기 영화의 세계로 이끈 거 같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