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 정보 없이 계획이 꼬여서 본 영화다. 원래는 펜엑 라타나루앙의 <님프>를 보려고 예매까지 했는데, 멍청하게 상영시간을 잘못 기억하는 바람에 영화를 놓쳤다. 극장까지 갔다가 그냥 오기도 그렇고 해서 이 영화를 보기로 했는데, 그나마도 2시 30분에 시작하는 영화를 2시에 시작하는 줄 알고 잘못 예매한 것. -_-;;;
영화의 주인공은 귀도라는 유명작가. 명망있는 문학상 후보에 올라 자기딴엔 우습게 보고 있는 작가와 경쟁하며 심사위원들이며 여론에 굽신거려야하는 처지도 마음에 안들고, 이사와 새집 꾸미기에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은 아내와의 사이도 어딘가 소원해지고 있고, 예민한 사춘기 딸과의 관계도 마음 먹은대로 풀려가지는 않는, 권태로운 중년남자다.
그런 그의 눈에 들어온 건 딸의 수영 강사 줄리아. 수영을 억지로 배우는 것이 싫었던 딸의 귀여운 도발에 넘어간 귀도는 딸 대신 줄리아에게 수영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점점 그녀에게 빠져든다. 줄리아와 수영장이 아닌 곳에서, 밤에 만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줄리아가 밤에 데이트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족도 일도 사랑도.. 그 어느 것에도 발을 깊게 담그지 못하고 책임지지도 않는 채로 비겁하고 안전하게 솔직하지 못한 삶을 살아가던 귀도가 줄리아의 삶에 필요 이상으로 관여하게 되고, 그 결과가 참혹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그제서야 그에게 그 모든 것이 진지하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영화는 결국, 한 남자의 성장을 담고 있다.
영화는 간혹 유머러스하게, 간혹 참신한 표현 방식으로 귀도의 일상과 결핍을 전시한다. 그야말로 전시다. 일관된 맥을 짚지 못하고 내내 산만하다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 정도로 이 남자의 주변을 '전시'만 하는데 그친다. 더 깊은 이야기를 꺼낼 수도 있었던 영화인데, 어느 선에서 머물면서 범작에 그쳤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자주인공은 아베 히로시와 휴 로리를 닮아서 무척 정감이 가더라. :-) 캐릭터도 두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와 비슷한 면이 있고...
여주인공인 발레리아 골리노가 눈에 익다는 생각을 했는데, 찾아보니 <레인맨>과 <못말리는 람보>에 나왔던 그녀였구나. 지금 이탈리아에서 최고의 여배우로 꼽힌다는데, 확실히 젊었을 때 미국영화에서 보이던 이국적인 아름다움과는 다른 속깊은 아름다움이 느껴진다.